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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 글쓴이:운영자 | 등록일:2016-01-20 | 조회:1
법보신문 - 차라리 어리석게 살자 <위안부 10억엔 해결이라는 어리석음>

법보신문 - 차라리 어리석게 살자 <위안부 10억엔해결이라는 어리석음> 

성원 스님  |  sw0808@yahoo.com

승인 2016.01.19  13:35:42

   
▲ 일러스트=강병호

추위를 좋아합니다.

아니 차가운 날씨에 꽁꽁 얼 것만 같은 차가운 촉감이 느껴지면 살아있다는 생생한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예전 우리 민족은 알타이 지방에서 차가운 몽골 지방을 건너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하굣길 내내 즐거웠습니다. 내 핏속에 차가운 북방의 삭풍을 헤치고 다니는 기마민족의 열정이 자꾸만 느껴지는 것 같아 그 이후 추위를 더욱 좋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안부 희생자 고통스런 삶
‘10억엔’ 계량한 이들 보며
‘우리나라’ 부끄럽다 느껴

베트남 ‘라이따이한’ 글에서
우리의 삶 ‘공업’임을 깨달아

후세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반인류 범죄에 대한 경각심


지역과 민족과 국가라는 단위의 학습된 자아에 너무나 익숙한 삶이 때로는 참으로 출가의 길을 가는 제게 어색하기도 하답니다. 송년과 새해를 넘어오는 시간, 정말이지 시간의 흐름조차 잠시 잊게 한 일이 내게만 있었던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수많은 젊은 소녀들의 청춘에 무수한 상처를 남겨 한생의 찬란한 빛을 잃게 해놓았으면서 그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계량화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도 합니다.

당사자에게는 단 한마디 말을 전하지도 않고 10억엔에 불가역적으로 해결했다고 발표하는 사람의 어린 자녀들의 모습이 자꾸 연상되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자꾸 우리나라가 부끄러워 졌습니다. 일본이 준 돈으로 만든 법인에서 우리의 부끄럽고 아픈 상처를 얼마나  씻을 수 있을까? 자꾸 우리민족이라는 말이 서글퍼졌습니다. 문득 내가 너무 이 사회와 멀리 떨어져 사회적 감각을 잃었나 했는데 함께 아파하고 당혹해 하는 분들이 있었네요.

새해의 원이 무엇인지 물었네요.

아이러니하게도 수없이 그려왔던 새해 새 그림을 저도 올해는 애써 그리지 않았습니다. 내게 지금 새로운 그림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다하지 못한 지난날들의 일들과 함께하지 못한 우리 이웃들의 삶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출가 전의 일이었습니다.

오키나와에 갔습니다. ‘태평양 전쟁 한국인희생자 위령탑’을 참배 했습니다. 우리산하에 널려있는 묘지 모양의 돌무더기로 소박하게 태평양 바라보는 언덕에 안치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배 후 잘 지어진 일본 위령각에 들어가 참배하였는데 동행한 교수님으로부터 정신 나간 젊은 놈이라는 질타를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그 교수님과 한참을 말다툼했습니다. 정신 나간 놈이 아니고 내가 마음으로 위로한 일본인은 그저 제국주의자들이 일으킨 전쟁터에서 못다 피고 죽어간 일본인 병사들이었다고 했습니다. 진정 젊은 제 마음도 그랬습니다.

그날 교수님께 우리들이 미워해야 할 대상은 왜 싸워야 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사라져간 젊은 일본 병사가 아니라 그들을 제국의 허황한 꿈을 핑계로 전쟁터로 내몬 군국주의자들이라고 열변했습니다. 한국사람이든 일본사람이든 모두 희생자라고 말했던 생각이 납니다.

그날 교수님께 마지막으로 물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가 제국주의적 군국주의의 길을 걸으며 전쟁을 일으킨다면 단지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따를 것인지를 답해보라고 다그쳤습니다. 교수님은 그날 다시 한 번 요즘 우리 젊은 놈들 정신이 이따위라고 질타하고 한숨 쉬며 자리를 떴습니다. 저는 민족과 조국과 보편적 인류애의 가치관에 대한 생각으로 남은 일정을 모두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언젠가 베트남에 남아있는 따이한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전쟁의 혼란 중에 무책임하게 버려진 여인들과 버려진 라이따이한의 비참한 삶의 이야기를 읽고 마음의 갈피를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라는, 우리나라라는 이 땅위에서의 삶이 얼마나 큰 공업의 운명인지 너무 마음 아팠습니다. 베트남 전쟁 이후 적군의 아이를 낳아 길러야 했던 그들의 아픈 삶과 그들을 위해 우리가, 우리나라가 무엇을 하였던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들의 문제가 개개인의 문제이겠습니까?

임진왜란 600주년 때 한 잡지에서 일본인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참 이해하기 힘들다. 자꾸 일본이 나쁘다고 가르친다고 무슨 도움이 될까? 국론이 분열되고 미리 잘 대응하지 않으면 또 다른 침략군으로부터 임란 같은 엄청난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가르쳐야 더 밝은 미래를 이루어 나아갈수 있다고 본다.’ 참으로 얄밉기도 하지만 정말 정신이 번쩍했습니다.

위안부들의 아픈 삶을 얼마의 돈으로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하며 하는 한마디 사죄의 말로 매듭지을 수 있을까요? 저는 우리들이 진정 이러한 역사 앞에서 승자가 되려면 우리 후학들에게 일본에 대한 분노와 원망보다 우리민족은 절대 이러한 반인륜의 범죄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사과보다 이 세상에 다시는 이러한 인류사가 없는 세상을 우리 힘으로 만들자고 우리들이 원을 세우고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보편적 인류의 가치이고 더 불교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베 내각이 군국주의로 내달리고 있는 의심 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기도합니다.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백성들이 가장 많이 희생당하고 가장 심한 혼돈을 겪게 된다는 걸 역사는 말해주었습니다. 아베라는 군국주의의 몽상가 앞에서 가련한 일본인들에게 펼쳐질 잔혹한 미래를 걱정해 주고 싶습니다.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약천사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태평양전쟁 희생자위령탑’이 태평양을 바라보며 서 있답니다. 유족회가 위령탑 건립 장소를 애써 찾고 있을 때 사찰에서 부지를 제공하여 건립하게 되었는데, 그 탑을 바라볼 때 마다 전쟁의 상흔에 아파했던 지난 젊은 시절의 인연이 떠오르곤 한답니다.

오늘도 서귀포에는 태평양 바람이 오키나와를 거쳐 불어오고 있네요. 매일 그 바람 맞으면서 자꾸 무뎌지는 감각을 나이 탓으로 돌려보지만 더욱 부끄러워집니다.

새해에는 부디 내가 받은 아픈 상처들을 넘어 나로 인해 엉클어지고 상처받았을지 모를 그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언젠가 가해자가 되었다가 까마득히 잊고 있을 일들을 애써 일구어내어 참회하고 싶습니다. 돈으로 아픔의 무게를 측량하지 못하는 우리들이 진정 어리석은 자들일까요? 그렇다면 올해는 그냥 어리석게 살고픈 맘으로 한해를 엮어가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픈 사문 성원 드림.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328호 / 2016년 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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