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또 울리는 파렴치한들...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21-05-19 21:00:35    조회: 1,273회    댓글: 0
 

미국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존 마크 램자이어라는 하버드대 교수는 오는 3월 출간 예정인 '인터내셔널 리뷰 오브 로 앤드이코노믹스 

'제65권에 '태평양전쟁 당시 성(性)계약'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그는 논문을 통해 "위안부 여성들은 성매매를 강요당한 성노예가 아니다"며 여성들이 일본군과 서로의 이익을 위해 계약을 맺어 

매춘을 했다는 주장을 했다. 램자이어 교수는 18세까지 일본에 거주한 적이 있는 친일 학자로 분류된다.

 

램자이어 교수의 주장은 일본에서 자라 일본인의 시각 특히 일본 극우들의 주장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극우 성향 일본 학자들이 일본군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한 램지어 교수를 공개 지지하고 나섰고, 

대표적인 극우지식인인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도 램자이어 교수의 주장에 지지를 표했다.

 

국내에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연구를 해온 서울대 이영훈 교수는 오래전부터 '위안부는 공창(公娼)이었고 

성노예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펴 왔고, 연세대 류석춘 교수도 "위안부 관련 직접적인 가해자는 일본정부가 아니며,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고 주장하는 등 일본 극우들과 같은 해괴망칙한 주장을 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그들은 한때는 나라없는 상황에서 이국까지 끌려가 몸과 마음을 빼앗기고. 

일부는 광복 이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떠돌다 한많은 인생을 마감한 사람도 많다. 

고국에 돌아와서도 지금까지도 ‘공창’‘매춘녀’라는 오해와 비난을 받으며 

일본과 한국 어느 쪽으로부터도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그들은 누구인가?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이 만주사변(1931.9.18)을 일으킨 이후부터 패전한 

1945년까지 강제동원 되어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을 말한다.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간 이들에 대한 책임과 범죄행위를 회피할 목적으로 자발적인 의미를 가진 용어인 

‘정신대(挺身隊)’라고 불렀다. 정신대는 ‘일본 국가(천황)’를 위해 솔선해서 몸을 바치는 부대라는 뜻으로 

일제가 단순히 노동력을 얻기 위해 동원했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정신대와 위안부의 성격이 전혀 다름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혼용되어 사용했고, 

일부 여자근로정신대로 동원된 여성 중 ‘위안부’로 끌려간 사례가 많았다. 일본은 이 경우를 예로들어 

위안부 존재를 부정하고 있고 이영훈 교수나 유석춘 교수도 이 부분을 계속 부각시키며 위안부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91년에 위안부문제를 위한 ‘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이란 단체가 출범하면서 정신대란 말이 

일본군 위안부를 포함하는 광의의 의미로 쓰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란 말로 통일해서 쓰고 있다. 

여자정신근로대(정신대), 종군위안부, 성노예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 위안부의 개념부터 정확히 구분해 이해해야 한다.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고 한일간 첨예한 갈등이 되고 있는 것이 “일본군위안부”다. 

이들은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의해 성 제공을 목적으로 강제로 동원된 가장 억울한 조선여성들이다. 

두 번째가 ‘종군위안부’다. 이들은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전선을 넘나들며 성을 제공해야만 했던 여성들이다.

“정신대”는 ‘여자근로정신대’를 줄인 말로 황국에 충성하는 마음으로 간호사나 군수공장 등에서 일하던 여성들이다. 

이들은 일부는 일본 또는 조선인의 꼬임에 빠져 위안부가 된 여성들도 있었다. 

이 세 부류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일본군 위안부”들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수면위에 떠오른 것은 ‘사단법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등이 중심이 되어 

지난 1991년 8월 14일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최초 대일배상청구소송 때 일본군 위안부 김학순(당시 67세)할머니가 

생존자로서는 처음으로 자신이 일본군'위안부'피해자였음을 밝힘으로서 시작되었다.

 

이후 정부에서도 위안부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등록을 받았다. 

그때 240명이 공식적으로 등록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등록하지 못한 위안부도 많이 있었지만 

스스로 위안부임을 밝히기 꺼려한 분도 있었고, 신고기간을 미처 알지 못해 등록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이들 중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 지원위원회 인정 7명은 포함되지 않음)

 

현재 정부(여성가족부)에 신고,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40명 중 

지난 2월12일 104세가 된 정복수 할머니가 별세해 225명이 사망하고 현재 15명만이 생존하고 있다. 

생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중 가장 젊은 이용수 할머니도 93세나 되는 등 생존자 대부분이 고령으로 

일본으로부터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 못 듣고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어 안타까운 상황이다.

 

존 마크 램자이어 하버드대 교수나 이영훈 서울대 교수, 류석춘 연세대 교수, 니시오카 쓰토무 일본 레이타쿠 객원교수 등은 

위안부 관련 내용 중 일부 내용을 가지고 일본군 위안부 전체 문제인양 호도하고 있다. 

일본 우익의 주장처럼 정신대와 위안부를 혼란시켜 주요쟁점을 흐리게 하는 파렴치한 행위는 중단하기를 바란다. 

 

 

 

 


일본군 위안부(이중 한 분이 박영심할머님임을 밝히기도 했다)



91년 일본군위안부피해자였음을 밝힌 김학순할머니

여자근로정신대

종군위안부로 추정되는 자료사진(인터넷 캡쳐)

학살당한 위안부 

서울 남산 기림터에 247명 일본군 위안부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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