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워치>일본 아사히신문 ‘위안부 보도’에 대한 검증보고서<7>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21-02-02 19:46:58    조회: 871회    댓글: 0

 


맺음말(おわりに)

- 나카니시 테루마사(中西輝政)(위원장) -

대상으로 한 두 가지 문제(対象とした二つの問題)

아사히신문의 위안부 보도 논란은 지난해 8월 5, 6일 아사히신문 지면에서의 ‘특집’ 이후 그때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이행했다. 또한 동년 12월에 공표된 이른바 ‘아사히신문사 제3자위원회’(이하, 제3자위원회)의 보고서(및 부속문서-이하 생략)에 의해 한층 현저한 형태로 부상한 가장 중요한 논점은 대략 다음의 2가지로 수렴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아사히신문이 과거 30여 년간 보도해 왔고, 그리고 이번에 처음 그 신빙성을 부정하고 지금까지의 보도를 취소한 이른바 ‘요시다 증언’으로 대표되는 ― 본 보고서가 곳곳에서 지적하는 대로 그 외에도 있지만 ― 이 신문의 일련의 위안부 보도를 둘러싼, 언론으로서는 이례적이라고도 할 역사적 불상사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었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 점에 대한 해명은 상술한 ‘특집’을 시작으로 한 일련의 아사히신문 자신에 의한 지면 취급에 있어서는 물론, 상기의 제3자위원회 보고서 등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바로 이 점에 대해서도, 미디어 혹은 기업체로서의 아사히신문사로서는 독립된 민간의 제3자적 입장에서 검증을 실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며, 본 보고서는 다른 많은 여러 논점을 포함하여 이러한 관점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도 기탄없이 고찰하였다. 

두 번째 논점으로서, 아사히신문에 의한 일련의 위안부 보도가 국제적으로 미친 영향을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논점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의 초점이다. 그런데, 본 보고서가, 도처에서 분석·고찰해 평가를 내리고 있듯이, 상기 제3자위원회의 보고서는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대로, 이 점에서는 완전히 결론을 포기하고 있다. 즉, 아사히의 일련의 위안부 보도가 국제 사회에서 일본의 입장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왔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어떤 가능성도 있음을 승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아사히신문사 자사, 그리고 아사히가 설치한 이른바 제3자위원회를 대신하여 다른 주체가 독립한 입장에서 이 점에 대한 고찰과 평가를 하고 일정한 결론을 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본 보고서는 다방면에 걸쳐 이 점을 논증하고 통일된 결론을 얻게 되었다. 

배경에 있던 ‘아사히적 체질’로서의 역사관(背景にあった「朝日的体質」としての歴史観)

첫 번째로, 보도기관으로서는 미증유의, 혹은 극히 희소한 불상사의 배경에 도대체 무엇이 있었는가. 이 점에 대해서 제3자위원회의 보고서가 반복해 언급하고 있는 바로는, 기사의 취소나 사죄를 ‘지연’하려고 하는 회사의 체질이 배경으로서 컸다고 한다. 또 이는 아사히신문의 정기 기고자로서 언론인인 이케가미 아키라(池上彰) 씨 등도 이른바 일본 기업에 많이 있는 ‘지연’ 체질이야말로 이번 문제의 배경으로서의 중심적 요인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제3자위원회의 보고서가 기사를 취소하고 이른바 ‘사과’를 하면, ‘이 문제를 방치해 온 역대 사람들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게 되어 버린다’고 두려워한 것도 기사 취소나 사죄를 이렇게까지 늦게 한 큰 원인의 하나였다고 지적하고 있다(제3자위원회보고서 43 페이지).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일본 사회에 흔해빠진 이른바 기업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 거의 단골처럼 지적되는 배경으로서의 기업체질론의 원용인 것처럼 보인다. 일반 사업회사의 ‘불미스러운 사건’과 같은 레벨에서, 많은 특권을 향유하며 커다란 사회적 사명을 표방하며, 특히 일본을 대표하는 매스미디어의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아사히신문이 저지른, 역사적 보도상의 스캔들의 원인과 그 배경이, “일본 기업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조직적 결함”이라고만 규정하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겨져서는 안 될 것이다. 쉽게 추측할 수 있듯이 거기에는 미디어라고 하는 특수한 업태에 깊게 관련되어 있는, 더 지적이고 사상적인 조직체질이라는 것이 검증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점에서, 지극히 중요한 지적이 제3자위원회의 보고서 도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만약 요시다 증언을 취소하거나 소위 ‘사과’를 하면, “위안부 문제 자체의 존재를 부정한 것으로 독자에게 받아들여지는 것 아닌가”하고 두려워한 것이다(예를 들면, 제3자위원회 보고서 43-44페이지). 이제 불필요하지만 만약 아사히가 요시다 증언을 취소하거나 그 일로 사과를 했다고 하더라도 8월 5, 6일 아사히의 ‘특집’기사가 실제로 그랬던 것처럼, 예를 들어 ‘논의  바꿔치기’(제3자위원회 보고서)라든가, 이른바 ‘광의의 강제성’론으로 밀고 간다면 아무도 아사히가 ‘위안부 문제 전체의 존재를 부정했다’고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추측할 수 있었고, 또 상기의 ‘특집’ 이후의 사태도 실제로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나카니시 테루마사(中西輝政) 교토대 명예교수는  일본의 정치학자 · 역사학자로, 국제정치와 근현대사 문제로 여러 목소리를 내오고 있는 일본 보수논단의 대표 논객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사진은 SakurasoTV 출연장면.
▲ 나카니시 테루마사(中西輝政) 교토대 명예교수는 일본의 정치학자 · 역사학자로, 국제정치와 근현대사 문제로 여러 목소리를 내오고 있는 일본 보수논단의 대표 논객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사진은 SakurasoTV 출연장면.


그렇다면, 왜 아사히는 ‘위안부 문제 자체의 존재를 부정했다’고 오해받는 것을 그렇게 지나치게 두려워한 것일까. 그것은 아사히가 위안부 문제의 존재와 그것을 되풀이하여 보도하는 것이 스스로 역사관이나 정치사상의 무오류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이념적 자산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매우 시사적인 것은 역시 제3자위원회 보고서가 곳곳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아사히는 그러한 취소나 사과를 하는 것으로 “아사히신문 (위안부)기사에 대해서 ’조작‘이라고 비판하는 세력”의 비판을 더 키우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예를 들면, 제3자위원회보고서 43-44페이지). 즉, 만약 자신의 위안부 보도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면 역사관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사상적 입장이 손상되고, 넓은 역사관 논란 전체 속에서 자신이 전략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빠지는 것을 강하게 두려워하고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역사관에 있어서도 아사히신문은 역시 “‘각도’를 너무 높게 설정했다”(제3자위원회 보고서 92쪽)고 볼 수 있는 보도를 의식적으로 중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적어도 아사히(朝日)신문은 기사의 신빙성보다 각도 있는 역사관을 지키는 것이 언론이 우선시해야 할 목표였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번 아사히신문의 보도상 대형 불상사의 배경에 있는 이른바 ‘기업 체질’이라는 문제의 실체는 언론으로서의 아사히신문이 조직적으로 입각한 역사관에 가장 큰 원인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아사히신문 특유의 편향된 역사관이 있었기에 조금 생각하면 누구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요시다 세이지 씨의 ‘만들어진 이야기(詐話)’를 진실로 믿고, 충분한 뒷받침도 없이 이에 달려들고, 간부 기자를 포함하여 다수의 기자가 그것을 반복하여 기사로 만들고, 보도 기관으로서 그 위에 입각한 ‘종군위안부’론 전체의 중요한 근거로 삼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것을 유지할 필요상, 다른 신문은 일찍 알아채 정정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 30년의 장기간에 걸쳐서 요시다 증언의 기사 취소를 어떻게든 ‘지연’하지 않을 수 없는 자승자박적 상황을 자초했던 것이다. 

보도가 국제사회에 미친 영향과 일본의 도의적 입장 및 국익에 미친 부정적 효과(報道が国際社会に及ぼした影響と日本の道義的立場や国益に及ぼしたマイナスの効果)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기술한 바와 같이 아사히가 스스로 설치한 제3자위원회 안에서조차 현저한 의견 분열을 볼 수 있어 그 보고서에 나타난 바와 같이 위원회 차원에서 결론을 보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본 독립검증위원회는 이 보고서의 몇 개 장의 분석과 평가에서 줄곧 아사히의 보도가 한국과 미국, 그리고 유엔 등 국제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오늘날에도 없어지지 않는 사실에 반하는 오해나 일본의 부당한 책임 추궁의 움직임의 중요한 요인이었음을 밝혔다. 굳이 여기서 되풀이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아사히신문이 설치한 제3자위원회 보고서가 개별 의견 중 하나이지만 크게 경청해야 할 의견으로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위원의 견해가 참고가 된다. 기타오카 신이치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아사히신문의-괄호 안은 집필자에 의한다. 이하 같다) 언설은 한국의 기대를 부풀렸다. 그 결과, 한국 대통령이 세계 정상에게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의 잘못을 알리는 이례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또한 일본 일각의 반발을 초래하고 반한, 혐한 언설의 횡행을 초래했다. 이런 편협한 내셔널리즘의 대두도, 일한 화해의 어려움도, 엄격하게 보면 아사히신문의 위안부 보도가 가져온 것이다”(제3자위원회보고서 94페이지). 이는 상기의 설문에 대한 극히 명확한 결론이다. 

또 미국과 쿠마라스와미 보고서 등 유엔에서의 위안부 문제의 이해 내지 오해에 아사히 보도가 행한 큰 역할과 일본의 입장과 국익에 ‘마이너스 기여’를 한 것에 대해서는 각각 본 보고서의 제3부 제1장 및 제3장의 논증으로부터 제대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특히 강조하여 두어야 할 중요한 것은 아사히의 보도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러한 국제사회의 오해와 일본국민에 대한 커다란 불명예와 현실의 폐해를 제거하는 데 있어서 아사히신문사가 언론으로서, 또 기업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사회적 책임을 완수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오늘날 일본정부 안팎에서 많은 일본국민의 세금을 들여서라도 국제홍보에 주력하여 이러한 일본의 훼손된 명예와 국익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바로 이 일의 당사자이며, 또 스스로 큰 홍보기능을 가지고 있는 미디어 기관으로서 아사히신문이  누구보다 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끝)

 

아사히신문 ‘위안부 보도’에 관한 독립검증위원회 공청회 기록

(朝日新聞「慰安婦報道」に関する独立検証委員会 ヒアリング記録)

 

 

헤이세이 26년(2014년)

 

12월 11일 (목)

코모리 요시히사(古森義久) 씨

산케이신문 도쿄본사 편집국 워싱턴 주재 객원 특파원. 

국제 문제 평론가. 국제 교양 대학 객원 교수. 

 

12월 19일 (금)

시모카와 마사하루(下川正春) 씨

전 마이니치신문 서울지국장

오이타(大分) 현립 예술 문화 단기대학 정보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 

(미디어, 코리아 연구)

 

 

헤이세이 27년(2015년)

 

1월 15일 (목)

마에카와 케이시(前川惠司氏) 씨

전 아사히신문 서울 특파원

 

1월 20일(화)

구로다 카츠히로(黒田勝弘) 씨

산케이신문 서울주재 특별기자(서울지국장 특별기자) 겸 논설위원

저널리스트

 

1월 22일 (목)

하타 이쿠히코(秦郁彦) 씨

현대사가. 법학박사. 

 

1월 29일 (목)

최길성(崔吉城) 씨

도아(東亞)대 교수. 히로시마대 명예교수. 

도아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소장

 

 

【공지】

1. 본 보고서 한국어판은 일본어판 마지막 대목의 정오표를 본문에 직접 반영하였습니다.

2. 본 보고서는 일본 역사인식문제연구회(歴史認識問題研究会)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2021년 1월 6일 현재) 

http://harc.tokyo/


(한국어판)

번역 :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편집 : 황의원 (미디어워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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