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협, 윤미향 30년 민낯 밝히겠다'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20-07-21 13:17:25    조회: 1,424회    댓글: 0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양순임 회장 기자인터뷰

-2020.6.1. 오후 2시.인천시 강화군 선원면 강화동로 알프스모텔 1층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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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이 끝난지 75년째, 세상은 잔학무도했던 일본은 사죄와 배상에 책임없다며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세상은 전쟁이 끝났는지 모르나 전쟁와중에 희생된 수많은 희생자들에게는 아직도 안식은커녕 분노가 식지않은 상태이다.

전쟁 와중에 희생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강제징용, 징병 등으로 한평생 고통속에 사망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또 살아있으니 전쟁후유증으로 살아도 산목숨이 아닌 상태로 죽을 고생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특히 일본군위안부는 치욕이며 뼈를 자르는 듯한 아픔은 지금까지도 우리를 아프게 하고 있다.

그간 신고, 확인된 247명의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중 이제 살아남은 열일곱 분, 이 할머니들마저 마저 대부분 고령이라 10년 내외면 모두 다 돌아가시게 된다. 그러면 치욕과 아픔의 산 역사가 거의 다 사라질 수 밖에 없다. 남은 몇 분이라도 마지막 여생을 편안히 뫼시기 위해 진작에 많은 일을 했어야 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일본군위안부 등 태평양전쟁희생자 문제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지난 73년에 창립했다. 우리는 대표적인 단체가 되기 위해 사단법인 등록을 위해 수십 차례 국가에 법인신청을 했지만 친일세력의 영향이었는지 번번이 허가를 받지 못했다. 거의 20여년만인 92년에 태평양전쟁희생자 관련 시민단체로는 최초로 사단법인으로 승인을 받았다.

태평양유족회는 지난 90년 10월, 대일사죄와 피해자 보상을 위해 정신대 할머니를 포함, 원고 24명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재판을 받았다. 정대협 창립자인 윤정옥 당시 정진대 회장은 우리 유족회에 힘을 실어 주겠다며 참여를 요청했다. 물론 이때 윤미향이란 사람은 이름조차 없었다.

유족회가 이처럼 대일소송을 제기하자 91년에 최초로 스스로 군대위안부라고 고백하며 세상을 큰 충격 속에 빠뜨렸던 고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한 이귀분 할머니 등 세분의 위안부와 군인, 군속 13명, 포로감시원 1명, 미망인 3명, 유가족 15명 등 총 35명의 원고단이 2차 대일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을 상대로 '반인도죄'란 죄목으로 한일협정 이후 최초로 대일소송을 벌였다.

그 당시에만 해도 정대협 지금의 정의연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때 윤미향 씨는 소속단체도 없이 35명의 원고단에 끼이고 싶어 했다. 그날 이후 윤미향 등은 일본군위안부할머니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서겠다며 정대협을 만들었고, 위안부할머니들에게 접근, 대변하며 활동반경을 넓혀왔다.

93년인가요? 6월에 열린 제25차 비엔나세계인권대회에서 윤미향 씨 남편 김삼석씨와 윤미향씨가 함께 동행했다. 김삼석씨는 우리 유족회의 사무총장 자격으로 동행했다. 동행했던 사무총장이었던 김삼석 씨는 행사기간 때 별 도움도 주지 않아 3개월 후에 사무총장직에서 해임시켰다. 당시 이효재씨와 대사는 세계인권 서명을 받는 행사에 유족회만 뺀채 서명을 받는 옹졸한 행위를 유족회를 멸시해왔다.

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이후 우리 유족회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활실태를 조사한 끝에 '위안부 생활안정지원법'을 제정해 달라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강력히 요구해 위안부할머니들이 편안히 살 수 있는 주거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섰다.

이때 위안부 자진신고기간이 설정되어 247명의 위안부가 등록되었다. 이때 위안부 명부가 어떻게 막 창립된 민간단체인 정대협으로 넘어가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으나 명백한 불법행위다. 위안부 명단을 확보한 정대협이 그 이후부터 우리 유족회가 제안한 위안부 주거문제 해결도 정대협이 주도해 만든 것처럼 모든 공적을 가로채갔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일본 정부에서 최초로 위안부문제에 대한 사죄의 뜻을 밝힌 역사적인 일본 관방장관인 '고노담화'가 93년 8월에 발표되었따. 고노 관방장관은 일본 정부차원에서 최초로 위안부할머니들이 실재 생존여부와 생활상태를 조사하기 위해 일본 측 조사단이 한국인 피해자들의 증언을 청취하려 했으나 잘 진행이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래서 우리 유족회에서 외교부에 확인해보니 바로 정대협이 아주 적극적으로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정대협은 '할머니들에게 일본 조사단의 증언 청취에 응하는 것은 일본 정부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며 증언청취를 반대했다. 결국 유족회가 적극 나서서 피해자 증언 청취를 성사시켰고 그 결과로 최초로 일본정부에 의한 첫 사죄 발언인 '고노담화'가 탄생하게 되었다. 할머니들이 생전에 자신의 처절하고 아픈 치욕적인 경험을 분명하고도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겨야할 이 일을 그 당시에 정대협은 왜 반대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고노담화 이후 일본 무라야마 총리의 사죄로 1995년 설립한 아시아 여성기금 즉 민간차원에서 위안부할머니들에 대한 보상안을 제시했을 때도 역시 정대협 관계자들이 나서서 할머니들의 의중과는 관계없이 '이 기금을 받으면 공창이 된다 화냥년이 된다'며 반대해 많은 할머니들이 현실적으로 생계차원의 보상조차 받지 못하게 막았다.

당시 정대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부 할머니들이 위로보상금을 받았는데, 이 할머니들은 정대협의 주장대로 '화냥년이란 말인가?' 정대협은 이때도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그 돈을 받았다고 '괘씸죄'를 적용해 '남산기림터'에 위안부 명단에 해당 할머니의 이름을 빼는 천인공로할 비행을 서슴지 않았다.

또 말씀드리겠습니다. 박근혜 정권이 결국 탄핵으로 막을 내려 더 이상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업게 된 사실이지만 지난 2015년에 한일 양국이 정부차원에서 도출해낸 '한일위안부 합의'가 있었다. 일본이 지급한 10억엔 출자로 '화해와 치유재단'을 설립, 위안부 피해 생존자와 사망자 유족에게 치유금 명목의 현금을 지급하는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그때도 정대협이 위안부할머니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것을 거부하고 '정의기억연대'라는 명칭으로 바꾸면서까지 10억엔 반환과 국민모금으로 대체하자고 했다. 할머니들은 생존해 있을동안 완전한 사죄를 받는 것이 어렵다면 부분적으로나마 보상이라도 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정대협의 적극 반대로 화해와 치유 재단도 결국 해산되게 되었다. 물론 당시 한일 양국의 위안부 합의가 100% 만족스런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인 할머니들의 안타까운 상황을 외면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난 2005년에 작고하신 고 강순애 할머니, 강순애 할머니는 생전에 "제 손을 꼭 잡고 회장님, 나 죽으면 화장해서 언니들이 묻혀있는 망향의 동산에, 어니 곁에 묻어 달라"고 여러번 부탁했다.

강순애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제가 정대협에 이 사실을 전했지만 정대협과 윤미향은 할머니의 유언을 무시한 채 납골당에 안치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자행했다. 할머니 이름을 새긴 비석 하나 세우는데 드는 비용이 그리 아깝다는 말인가?

뿐만아니라 현재 납골당에 안치된 다섯 분의 위안부 할머니들도 망향의 동산에 안치되지 못하고 지금도 답답하기 그지없는 납골당에 갇혀있다. 정대협과 윤미향은 이들이 정대협 소속이 아니라 유족회 소속이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무시해 왔다. 살아서는 일본에 의해서 고통받았는데, 죽어서도 언니동생들 곁에 함께 누울 수 없다는 말인가?

"강순애 할머니를 포함, 노청자 할머니, 이상옥 할머니, 김복선 할머니,김모 할머니....

우리 유족회가 힘이 없어 언니동생들이 묻혀있는 망향의 동산에 고이 모시지 못하고 지금도 차디찬 납골당에 모셔두고 있어 너무나도 죄송하고 송구스럽습니다."

이처럼 지난 수 십 년 동안 정대협과 윤미향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피해자 중심의 단체가 아니라 또 하나의 권력단체를 살찌우는데 혈안이 되었을 뿐이다. 정대협과 윤미향은 할머니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도 다하지 않은 천인공로할 집단으로 전락한지 오래됐다. 이번에 드러난 윤미향 의원의 비리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정대협과 윤미향이 이처럼 사사건건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기라도 한 것인가? 검찰에서 윤미향씨에 대한 사법적 절차가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윤미향 개인의 비리 프레임으로 몰아가는 것도 잘못되었고, 각종 비리의 시궁창이 되고 있는 정대협(정의연)도 존속되어서는 안된다.

그동안 수많은 세월동안 위안부할머니들의 고혈을 빨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정대협(정의연)이 계속 존속된다면 이제 몇 분 남지 않은 할머니들은 마지막 고혈까지 빨리며 이 단체의 내일을 살찌우는데 희생되어 쓸쓸히 죽어가는 비극적인 결말에 다름아니다. 즉각 해체되어야 한다.

정부에서 더 이상 이 단체에 지원금을 보내서는 안된다. 국민을 상대로 한 기부금도 모금해서는 안된다. 왜 할머니들을 앵벌이 시키며 모금을 하고 할머니들이 이용하지도 못할 시설에 거액을 투자해야 하나? 정작 할머니들은 아무것도 누리지 못한다.

정의연, 이전의 정대협은 그 시작은 순수했는지 모르나 이번에 이용수 할머니의 지적처럼 정의연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을 대표하는 단체로서 도덕성을 상실했다. 모든 국민들로부터 레드카드를 받은 이 단체가 존속되는 것은 앞으로도 국민들을 계속 속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우리 태평양전쟁희생자 유족회가 정대협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고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한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에 노력해 왔다. 어느 날 정대협이 이 모든 것을 송두리채 훔쳐가 자신들을 위해 치부해온 또 하나의 부 정의롭고 불의한 이익단체를 탄생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30년간 오롯이 할머니 위한 운동을 했다고 눈물로 퉁치지 말라. 30년 동안 할머니를 위해 도대체 무슨 성과를 거뒀는가? 우리 유족회가 추진해 온 역사와 기회를 중간에서 가로챈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해체 외에는 답이 없다.

 

 

 

 

                                                                사단법인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양순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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