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위안부 배상금 딜레마 文정부 “108억 걷어차고 12억 내놓으라는 셈”

작성자: 최고관리자님    작성일시: 작성일2021-01-23 21:05:12    조회: 2,233회    댓글: 0

위안부 배상금 딜레마 文정부 “108억 걷어차고 12억 내놓으라는 셈”

이정훈 기자 입력 2021-01-23 19:38수정 2021-01-2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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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 세상을 떠난 위안부 할머니들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뉴스1]


자존심 때문에 108억 원은 “가져가라”고 하고, 같은 사안으로 “12억 원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본이 주겠다는 108억 원(10억 엔)을 걷어 찬 건 2018년, 12억 원을 내놓으라고 한 건 2021년이다. 돈을 걷어찬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고, 달라는 이는 사법부라는 차이만 있을 뿐, 이 주체 모두 한국 정부다.

문 대통령이 일본이 주겠다는 108억 원을 걷어찬 사연은 이렇다. 자고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 사이의 난제였다. 일본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해왔지만, 전쟁 시 여성을 성노예로 썼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일본은 국민 성금을 걷어 위안부 피해자에게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국민 성금이 아닌, 일본 정부의 사과와 돈만 받겠다며 108억 원을 거절했다.

이 투쟁에 앞장선 이는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이다. 이 일로 사회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며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자리까지 차지했다. 2015년 12월 28일 일본은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서면으로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위안부 관련 사과를 반복하고 위안부 피해자를 위해 10억 엔을 내놓는다는 합의를 한국과 했다. 그리고 한국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맺어 유대를 강화했다. 윤미향 의원이 이끌던 정의연은 이를 맹렬히 반대했지만 대세를 돌리진 못했다. 당시 우리 정부가 파악한 위안부 피해자는 246명(생존 47명, 타계 199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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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금 수령 거부한 이들


양국은 이 돈을 화해와 치유재단을 만들어 집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2017년 취임한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를 무력화하고자 재단 운영비부터 차단했다. 문재인 정부와 정의연의 계속된 합의 비난 탓인지 모든 피해자가 위로금을 신청하지 않았다. 생존자 가운데 26%(12명), 유가족 중에서는 68%(135명)가 위로금을 거절했다. 그러자 정의연은 국민 성금을 거둬 생존자 12명에게 위로금을 대신 건네자는 운동을 펼쳤다. 이에 많은 이가 호응해 12명 중 8명에게 성금이 돌아갔다.

정의연은 8명에게 1억 원과 함께 여성인권상을 수여했다. 일부 수상자는 기부 형식으로 정의연 측에 받은 돈의 일부를 되돌려줬다. 현재 윤 의원은 준사기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화해와 치유재단은 108억 원 중 재단 운영비 등으로 52억 원을 집행하고 나머지 56억 원은 남긴 채 해산했다. 문재인 정부는 10억 엔(당시 환율로 103억 원)을 마련한 뒤 일본에게 가져가라고 했다. 일본은 합의를 고수하겠다며 재단이 집행하고 남은 56억 원은 물론이고 문재인 정부가 마련한 103억 원도 가져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위안부 생존자 12명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주권면제를 어겼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한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뉴스1]


이 소송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일본 정부는 (재단 위로금과 같은) 1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일본은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외무성으로 초치해 항의했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한국 정부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 위안부합의를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이 재판은 국제사회의 불문율인 ‘주권면제’를 어겼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외교 관계는 상대국 주권 인정을 전제로 맺는 것이니, 어떤 경우에도 수교한 나라에 대해서는 자국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권면제다. 한국 법원은 과거에 있었던 이와 유사한 소송을 주권면제를 이유로 각하해왔다. 주권면제와 혼동되는 것이 2017년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은 징용공에게 배상하라”고 한 판결이다. 주권면제는 외국 정부에게만 해당될 뿐 법인이나 개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이 내린 징용공 배상 관련 판결에 대해서도 “징용공 문제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일괄 처리됐다”며 판결 따르기를 거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소송에서도 주권면제와 청구권협정을 내걸며 심리에 응하지 않았다. 향후에도 일본은 항소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때부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판결을 이행하려면 일본 정부의 재산을 압류해야 한다. 한국에 있는 일본 정부 재산은 외교 공관 등 치외법권 지역이라 압류가 불가능하다.

대안으로 화해와 치유재단이 남긴 56억 원이나, 우리 정부가 일본에게 가져가라고 한 108억 원 중에서 12억 원을 떼어내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말이 되지 않는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12억 원을 확보하면 이는 일본으로부터 10억 엔을 받은 것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18일 “강제 집행 방식 현금화는 한일 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현명했다면 합의에 대한 일부의 불만은 박근혜 정부 탓으로 돌리고, 국가 간 약속이라는 이유로 위안부 합의를 이어갔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 오히려 비리 의혹을 받는 윤미향 의원의 국회 진출을 도왔다. 정의연은 위안부 할머니를 도구로 삼았다는 비난마저 받고 있다. 이번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로 한일관계가 더 나빠진다면 도쿄올림픽을 남북이 만나는 장소로 삼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 구상도 물거품이 된다.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74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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